환경과 생태를 중시하는 시대를 살고 있는 탓일까. 비타민제도 천연제품이 호황이다. 화학적으로 합성하지 않고 채소와 과일에서 추출해 만들었다는 광고가 붙는다. 심지어 100% 천연 비타민제라고 주장하는 제품도 등장했다. 이산화규소 등 첨가물이 일절 들어있지 않다고 강조한다. 보통 제품보다 2배에서 최대 10배까지 비싼 데도 임신부나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에게 날개 돋친 듯 팔리고 있다.
그런데 비용의 문제를 떠나, 천연비타민제는 과연 우리 건강에 도움을 줄까?
현직 약사이자 유명 블로거이기도 한 임영빈 씨는 최근 펴낸 ‘약이 되는 독설’을 통해 천연비타민제에 대한 맹신과 첨가물에 대한 오해를 통렬히 비판했다. 비타민제를 비롯한 건강기능식품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갖고 있는 오해를 목격했고 이를 바로 잡고자 직접 책을 냈다고 말했다. 그가 책에서 강조한 2가지 오해를 인터뷰를 통해 풀어봤다.
■ 첫째, 100% 천연비타민제가 좋은가
동결건조한 사과 한 개의 무게가 약 17g입니다. 17g을 갈아서 알약으로 만들면 알약이 몇 개 나올 것이라 생각하나요? 손가락 한마디만 한 알약이 보통 1g 정도 하니 알약 17개를 먹어야 사과 한 개를 먹은 것과 같겠군요. …(중략)… 알약 2~4정 안에 들어있다고 하는 것이 사과부터 시작해서, 양파, 케일, 아세로라 기타 등등 수십 가지에 이릅니다. 그런데 과연 이것들이 실제로 얼만큼이나 들어갔을까요? 현실적으로 100% 천연 비타민은 불가능하므로 이들은 미량의 천연비타민을 넣고 합성비타민을 추가로 넣어 필요한 비타민 용량을 맞추어 제품화합니다. 이것이 시중에 존재하는 천연비타민의 진짜 얼굴입니다. 물론 안그런 제품도 있습니다만 정말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140 p.g.)
천연이라는 말은 유혹적이다. 같은 비타민이라고 해도 ‘천연’이라고 하면 왠지 믿음이 간다. 합성비타민을 먹으면 안 좋은 물질이 몸에 축적될 것 같은 근거 없는 공포 때문이다. 그러나 정말 건강을 위해서라면, 값비싼 100% 천연비타민제를 먹을 바엔 차라리 채소나 과일을 직접 먹는 게 낫다.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가격이 너무 비싸다. 일례로 엽산 제품을 보자. 임신부들이 태아 건강을 위해 많이 복용하는 영양소다. 100% 천연 엽산 제품은 30일분이 99,000원이다. 보통 엽산 제품이 10,000-15,000원 사이임을 감안할 때 거의 10배나 비싸다.
문제는 엽산의 경우, 오히려 합성제품이 천연제품보다 흡수율이나 생체이용률 면에서 유리하다는 것이다.
2000년 미국임상영양학회지는 엽산을 합성 영양제 형태로 먹을 경우의 생체 이용률이 100%라면 음식과 함께 먹을 땐 85%, 음식만으로 먹을 땐 50%로 떨어진다고 발표한 바 있다.
실제 삼성제일병원 산부인과 한정열 교수를 비롯한 많은 전문가들도 임신부들에겐 고농도 엽산 섭취가 가능한 합성제품이 좋으며, 어떠한 의학 논문에서도 천연제품이 합성제품보다 좋다는 근거가 발표된 바 없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엽산 뿐 아니라 비타민 C나 B, D 등 다른 영양소도 마찬가지다. 천연이 합성보다 좋다는 타당한 근거가 없다. 그러나 인터넷에서 합성비타민을 검색하면, 출처가 의심되거나 권위가 떨어지는 일부 외신을 인용해 부작용을 과대포장한 글들이 쏟아진다. 석유는 물론 개구리 피부껍질에서 비타민 원료를 추출한다며 과거 일부 메이커들의 제조 방식을 문제 삼기도 한다. 그러나 요즘 시판되는 비타민제는 합성이라 할지라도 대부분 옥수수 전분 등 천연 원료를 이용해 만들어낸다.
둘째, 천연제품으론 필요한 비타민을 충분히 담을 수 없다. 비타민 B가 대표적 사례다. 그는 비타민제도 시대 상황을 반영해야한다고 말했다. 과로와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은 각기병을 예방할 정도의 비타민 B 함량만으론 만족할 수 없다는 것이다. 비타민 B가 신진대사를 향상시켜 피로를 이기고 컨디션을 좋게 유지하는데 가장 중요한 비타민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전세계 유수의 메이커들은 종합비타민제를 만들 때 일일권장량보다 10배(1,000%) 이상 많은 양의 비타민 B를 넣고 있다. 일일권장량은 결핍증을 모면할 수준의 섭취량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비타민 B는 수용성이라 몸에 쌓이지 않고 쓰고 남은 양은 바로 배출된다.
문제는 대부분의 100% 천연비타민제를 표방하는 제품들의 경우 비타민 B 함량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합성이 아닐 경우 순도가 높은 비타민 B를 충분히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천연비타민제로는 기운을 내고 컨디션을 좋게 하는 비타민 B 본연의 효능을 제대로 누릴 수 없다. 그는 "천연제품의 경우 원래 비타민 B 이외에도 각종 조효소가 풍부해 적은 용량으로도 효과를 낼 수 있다. 다만 그 '적은' 용량만큼도 넣어서 만드는 곳이 거의 없는게 문제"라고 말했다.
천연이 나쁘다는게 아니다. 토마토의 라이코펜, 녹차의 카테킨, 포도의 레스베라트롤처럼 몸에 좋은 식물 색소는 천연 형태로 담는게 바람직하다. 그러나 비타민 B나 C, D처럼 비타민은 고순도로 값싸게 알약 하나에 충분한 양을 담기 위해 합성 비타민을 쓰는 것이 전세계 유명 메이커들의 공통된 선택이다. 천연과 합성을 혼합한 형태가 좋다는 것이다.
더욱 중요한 본질적 문제는 일부지만 업체에서 100%라는 표현을 함부로 사용하는 것이다. 설령 채소와 과일에서만 추출했다 하더라도 그 채소와 과일은 농약이나 중금속, 화학비료가 100% 없을까. 광고심의가 까다롭기로 알려진 건강기능식품 표기에서 어떻게 100%란 표현을 쓸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인터넷 구석구석을 도배중이지만 규제가 없다. 소비자들이 알아서 현명하게 선택할 수 밖에 없다.
■ 둘째, 식품 첨가물은 독약인가?
비타민제 등 알약에 흔히 들어가는 첨가물 이야기를 해보자. 이산화규소와 스테아린산 마그네슘이 대표적이다. 인터넷에선 마치 독극물처럼 나쁜 성분으로 매도되고 있다. 방부제라고도 하고 심지어 발암물질이라고도 한다. 모두 잘못된 것이다. 이들은 부형제일 뿐이다. 즉, 비타민 등 영양소를 원료로 금속 틀 안에서 압력을 가해 알약을 만들 때 매끈하고 단단하게 만들기 위해 소량 들어가는 성분이다. 부형제가 없다면 알약이 부스러지는 등 제품의 안정성이 떨어지며 유통기간이 짧아져 비용 증가 등 결국 소비자 피해로 돌아오게 된다.
오늘날 부형제는 안전성이 검증된 성분만 사용된다. 세계보건기구나 미 식품의약국(FDA) 등 어떤 권위 있는 기관에서도 이산화규소나 스테아린산 마그네슘에 대해 먹지 말라고 권고한 바 없다. 알약의 형태로 만들어지는 전세계 모든 메이커 제품에 이들 부형제가 공통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우리나라 식약처도 이들 성분의 부형제 사용을 승인했다. 그런데 인터넷에서 이들은 단지 첨가물이란 이유만으로 지나친 비판을 받고 있다.
임영빈 약사는 이산화규소와 스테아린산 마그네슘 등 부형제는 과량 섭취만 아니라면 위험하지 않다고 말했다. 『Handbook of Pharmaceutical Excipients』라는 책이 중요한 근거다. 이 책은 각종 논문을 바탕으로 수많은 의약품에 들어가는 부형제의 용도와 물성, 안전성을 총망라한 전문가용 지침서다.
“부형제 논란은 명백한 과장이며 공포 마케팅의 결과입니다. 잘못된 약학 정보 중 하나죠. 이산화규소는 무독성의, 비자극 물질입니다. 이산화규소를 흡입해서 폐 쪽으로 가면 독성이 나오지만, 알약으로 섭취해서는 문제될 게 없습니다. 스테아르산 마그네슘 역시 무독성이며 발암성이 없는 물질입니다. 그렇게 치면 불량식품, 과자 등에 들어 있는 일반 식품첨가물이 오히려 더 해롭습니다. 인스턴트 식품 등에 들어가는 방부제가 더 위험합니다.
해외에서는 부형제에 대한 논란이 없습니다. 소수의 단체는 천연 음식을 먹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메이저급 언론에서 부형제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일은 없습니다. 우리나라에서만 일어나는 특이한 현상이죠.”
책에 소개된 이산화규소와 스테아린산 마그네슘의 치사량(60kg 성인 기준, 몸무게 단순 환산시)은 189.6g, 600g다. 1,000mg짜리 커다란 알약 하나당 10mg 정도가 들어가니 각각 1만8960개, 6만 개의 알약을 먹어야 죽는다는 얘기다. 매일 한 알씩 먹는다면 약 52년, 164년이 걸리는 양이다.
참고로 실험동물의 절반을 죽게 만드는 LD50을 보자.
스테아린산 마그네슘은 10g/kg이다. 소금의 LD50가 3g/kg 임을 감안할 때 소금보다 3배 이상 안전하다. 소금은 NaCl이란 화합물이다. 혈압을 올리고 위암을 일으킬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늘 소금을 먹으면서 소금을 독극물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소금보다 훨씬 안전한 성분인데도 단지 부형물이란 이유로 몇몇 업체의 상업적 공포마케팅으로 마치 먹어선 안되는 성분으로 매도되고 있다. 오히려 이산화규소는 모발 건강에 도움을 준다는 보고가 있으며 스테아르산 마그네슘은 마그네슘 보충용 영양제의 주성분으로 쓰이기도 한다.
그런데 알약 하나당 함유량이 적더라도 이처럼 장기적으로 섭취하면 죽게 되는 것 아닌가. 의심의 끈을 놓지 못하는 기자의 물음에 “이산화규소와 스테아르산 마그네슘은 인체 내에 쌓이는 물질이 아니다.”라는 시니컬한 답변이 돌아왔다. 기사에서 이 대목을 꼭 강조해 달라는 말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