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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건강보험공단의 발표에 따르면
2013년 고지혈증(이상지혈증, dyslipidemia)으로 진단된 사람은
128만 8천명으로
최근 5년 사이에 고지혈증 진단이 두 배 가까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그에 맞춰 고지혈증 치료제 시장도 폭발적으로 성장하였는데
2001년 600억 원 가량이던 국내 고지혈증 치료제 연매출액은
2014년 7800억 원으로 증가하였다.
2015년 처방약 상위 10개 중 3개가 고지혈증 치료제였다(2위 리피토, 5위 크레스토, 6위 바이토린).
고지혈증은
9-12시간 공복 후
채취한 혈액 검사에서
콜레스테롤을 측정하여 진단하게 되는데
고혈압이나 당뇨병처럼
일률적인 수치를 적용하여
커트라인 자르듯 진단하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심뇌혈관질환의 위험인자를 고려하여 진단하게 된다.
같은 콜레스테롤 수치라도 개인의 특성과 병력에 따라
약을 먹어야 할 수도 있고 먹을 필요가 없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고지혈증을 왜 진단해야 하는 걸까.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으면 뭐가 문제가 되는 것일까.
일반적으로 혈중 콜레스테롤,
특히 LDL콜레스테롤은
심뇌혈관질환(협심증, 심근경색, 뇌졸중)의 발병과 강한 상관관계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4년 사망원인에 따르면
2위가 심혈관질환,
3위가 뇌혈관질환이다.
즉 주요 사망원인인 심뇌혈관질환의 예방을 위해
고지혈증을 진단하고 치료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2013년 미국심장학회(AHA/ACC)는
새로운 콜레스테롤 조절지침을 발표하였다.
이 개정안의 가장 큰 특징은
과거에 있었던 대규모 임상결과를 토대로 하여
확실한 증거가 뒷받침 되는 지침만을 제시하였다는 것이다.
고지혈증 치료제로 스타틴(statin)제제만을 인정하였으며
스타틴을 복용 하였을 때 분명한 이득이 있는 경우를 다음 네 가지로 한정하였다.
1. 심뇌혈관질환 환자
2. 1에 해당 안 되면서 LDL콜레스테롤 수치가 190mg/dL 이상인 사람
3. 1,2에 해당 안 되는 40-75세 당뇨 환자
4. 1,2,3에 해당 안 되면서 10년 내 심뇌혈관질환의 발생 가능성이 7.5% 이상인 사람
(*10년 내 심뇌혈관질환 발생 가능성은 나이, 성별, 총콜레스테롤, HDL콜레스테롤, 수축기혈압, 고혈압약 복용여부, 당뇨, 흡연여부를 고려하여 산출)
위에 해당되지 않는 사람의 스타틴 복용은 현재로서는 근거가 약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위 네 그룹의 스타틴 복용은 도움이 될까?
심뇌혈관질환을
이미 가지고 있는 환자의 경우(1번 그룹) 스타틴의 이득은 분명하다.
질병의 재발과 사망률을 낮춰준다.
이 경우 콜레스테롤 수치와 상관없이(수치가 낮더라도) 약복용이 권장된다.
그러나 현재 심뇌혈관질환이 없고
발병의 위험인자만 가지고 있는 경우(2,3,4 그룹)
스타틴이 이득이 되는지에 대해서는 애매한 부분이 있다.
여기서 말하는 이득은 심뇌혈관질환의 발병과 사망의 감소이다.
스타틴을 복용하였을 때
LDL콜레스테롤 수치가 감소하는 것은 확연하다.
그러나 그것이 실제 심혈관질환의 감소나 그로인한 사망의 감소로 이어지는지에 대해서는 근거가 다소 취약하다.
1만 명 이상의 환자를 대상으로 시행된
스타틴의 대규모 임상연구 결과 플라시보 복용군의 사건 발생률이 3%인 데 비해서
스타틴 복용군의 사건 발생률은 2%로 나타나
통계적으로 유의한 결과가 도출됐다.
이런 차이가 우연히 발생할 확률은 1만분의 1에도 못 미친다.
무슨 말인가.
간단히 말해 효과가 없다고는 할 수 없으나,
심근경색이 없는 사람 100명 중에 이 약의 복용으로 실제 이득을 본 사람은 1명이라는 뜻이다.
대리 목표점(surrogate end point)이라는 개념이 있다.
여기서 대리는 뭔가를 대신한다는 뜻이다.
고지혈증약을 먹어야 하는 이유가
심근경색을 줄인다는 것이지만,
실제 실험에서 그 목표달성의 확인은
그 목표와 상관관계가 높다고 판단되는 다른 지표(여기서는 콜레스테롤 수치 감소)의 측정을 통해 이루어졌다.
심장전문의이자 미국국립과학원 의학원의 일원이기도
한 에릭토폴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스타틴을 복용하는 거의 모든 환자들은
혈액검사에서 환상적인 결과를 얻는다.
하지만 심근경색 발생병력이 없으면서
심근경색 발생위험요인을 갖고 있는
100명의 환자 가운데 단 1명만이 실제로 이익을 볼 뿐이다.
그러므로
부작용 발생의 위험을 감수하고
연간 3000억 달러에 달하는 미국의 처방약 비용에
스타틴 약값을 추가함으로써 얻어지는 가장 큰 이익은,
정상범위 바깥에 있는 혈액검사 수치를 예쁘게 돌려놓는 미용적 효과에 불과하다.
대리 목표점 달성을 과대평가함으로써
일차적 예방목적으로 스타틴을 대량 처방하는 것은
임상시험 결과를 잘못 해석한 데서 비롯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에릭토폴은 의학계에서 논문이 가장 많이 인용되는 10명 중 한명이다.
이와 관련하여
최근 코크란 협의(Cochrane Collaboration)라는
이름의 국제적 컨소시엄은
3만4천명 이상의 관련 데이터를
모두 검토한 후,
원래 심장질환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에 대한 스타틴 처방은
이익이 없다고 결론 내렸다.
정리해보면, 이미 심뇌혈관질환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스타틴은 그 이득이 분명하다.
심뇌혈관질환은 없지만
추후 발병할 가능성이 높은 사람일 경우에는
일률적으로 복용여부를 결정하기보다는
환자 개개인의 심질환 위험도를 개별화하여
약복용의 득실을 따져보아야 한다.
스타틴 역시 다른 모든 약과 마찬가지로 부작용이 있다.
앞서 언급한 대규모 임상시험에서
스타틴을 복용한 400명 중 1명은 당뇨가 발생하였다.
스타틴으로 인한 간 손상은 심각할 수 있어
약 복용 전 간수치의 확인이 필요하다.
드물게 발생하는 근병증이나 뇌출혈은 더욱 심각한 부작용이다.
병을 보지 말고 환자를 보라는 지적은 여기서도 유효하다.
김수환 내과 전문의 medkimsh@gmail.com